조용필, 그 이름만으로

대중은 영웅을 바란다. 난세를 구할 영웅, 난장판 정치 속에서도 희망을 걸어볼 정치 스타가 나오길 바란다. 헐리우드 액션 영화는 힘없는 소시민이 어떻게 영웅이 되어 지구를 구하는지를 수많은 버전으로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하지만 진짜 영웅은 ‘반짝’ 뜨고 지는 별이 아니다. 그 목숨이 어떻게 스러졌든 간에 세대를 넘고, 시간을 넘어 역사와 함께 할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영웅을 우리는 늘 기다리고 또한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대중은 항상 보편성을 지향한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지점에 그 의미가 맞닿아있다. 대중성에 적합한 것이 대세가 될 수 있고, 소수의 보편성에 적합한 문화라고 해서 하위문화는 아니다.

흑과 백으로 나뉘는 이념이 아니듯 대중성도 특수한 문화를 포용하며 퍼지고 있다. 어른들이 즐기는 문화,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가 의미를 따로 있지 않고 남녀노소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에 우리는 보편적 대중성을 부여한다.

조용필은 그러한 대중성의 보편적 지점이다. 가수로서 사십 년 동안 그는 수많은 노래를 불렀고 음반과 그외 각종 기록들은 여전히 신화로 기억되고 있다. 조용필이 TV나 기타 언론 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지도 오래. 그러나 그는 여전히 순회공연 중이다.


2008년 5월에서 12월까지 <The History>는 7개월 동안의 순회공연으로만 33만 명을 모았다. 또한 18집 <Over the Rainbow>까지 발매된 그의 앨범 판매량은 2천여 만 장에서 지금까지 진행중이다. 기록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의 기록은 조용필을 수식하는 수식어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오빠 부대’의 원조이자 ‘가왕(歌王)’으로 우뚝 선 조용필. 우리는 왜 그를 가왕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MBC<일밤> ‘나는 가수다’(나가수)가 분분한 말들 속에서도 가장 뚜렷한 성과가 있다면 가왕 조용필을 방송국 스튜디오로 모신 점이다. 가수들의 가수.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왕이 된 그가 방송국에 왕림한 것은 15년 만의 일이다.

이전에 <나는 조용필이다> <위대한 탄생> 등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쏟는 애정은 가히 가왕에게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 프로인 가수들이 노래로 경합하는 독특한 예능 프로그램을 그는 찬성하진 않지만 ‘애정’과 ‘관심’을 외면하기 힘들어서 방송 출연을 한 것이리라 누구나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수들의 가수는 가왕으로서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정확히 문제점을 짚어 주었다. 왜 그가 가왕인지 한 마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두가 깊게 공감했다. 조심조심... 그의 앞에 선 후배 가수들이 보여준 팽배한 긴장감은 조용필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나가수’의 조용필 스페셜은 경연의 한 테마일 뿐이었지만 우리는 이번 무대를 통해 조용필의 노래가 얼마나 조용필다웠는지, 왜 지금까지 묻히지 않고 세월과 함께 살아숨쉬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가창력이나 곡의 완성도만으로 가수들의 왕으로 군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용필이 가왕으로 일컬어지는 까닭은 ‘조용필의 노래’는 그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노래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길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꿈)

‘나가수’ 스페셜에서 소개된 그의 노래 <꿈>에 대해 조용필은 “나의 어릴 적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는 가사였다. 비행기 안에서 농촌에 총각이 없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직접 쓴 곡”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가 이 곡을 낸 것은 13집 앨범이었으니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 바도 없고 그래서 이미 농촌을 떠난 기성세대나, 늘 집을 떠나 꿈을 찾아 살아야 하는 우리네 청춘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곡에서 사람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같이’ 빠져들 수 있었다.

윗세대에게는 ‘나의’노래가 되었고, 아랫세대들에게도 어필하는 실험정신과 편곡까지. 조용필의 노래는 남녀노소 누구나 향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세계를 갖고 있다. 아니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가수다. 록을 뿌리에 두고 뽕짝 리듬을 타며 노래하고, 트로트, 포크, 발라드, 퓨전, 민요까지 그가 부르면 그의 장르가 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그를 세상에 알린 대표곡이라면 <창밖의 여자>는 1980년대를 그의 독주시대로 만들게 한 노래다. 신디사이저의 실험적인 음향으로 유명한 <단발머리>는 그 시절에도 지금도 실험성적인 가요 중의 하나로 꼽힌다. <친구><꿈>과 <큐><킬리만자로의 표범>는 온 국민을 그의 친구로 만든 노래이자 잃어버렸던 꿈을 되살려준 노래였다.

그의 대부분의 노래는 이처럼 장르와 가사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배어있는 한(恨)의 정서가 그것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지키고자 평생을 애쓴 그의 이러한 노력은 노래 하나하나마다에 묻어나온다. 담담히 노래하지만 가슴을 울리며, 깊고 넓은 음역으로 토해내는 그의 노래는 그래서 우리의 음악 같고 멋스럽다.

1975년 미국에서 식당을 하는 누나 부부에게 선물받은 신디사이저를 선물받은 이래 그의 가수 인생은 지금까지도 올곧이 현재진행형이다. 가수 인생이 평탄하지만은 않은 때도 그는 음악에 매진했다.

조용필이 선택했던 창법이 우리 고유의 판소리 창법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피를 토하는 연습을 통해 그는 우리 가락의 깊고 한스러운 울림을 체득했고, 득음의 경지를 획득했다. 단순히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는 노래를 위해 고독하고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 그의 공연은 다른 가수들처럼 화려한 이벤트나 게스트가 없이도 그의 노래만으로도 가득 차고도 남는다.

“음악은 아이디어·영감 등이 중요한 것이지, 자기 삶이 순탄치 않고 좀 그렇다 해서 음악에 연관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수는 한 명의 ‘엔터테이너’이고 ‘노래 연기자’입니다. 가수로서 인정받으려면 젊은 층에서부터 노년 팬까지 좋아할 수 있도록 민요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내 장르로 들어가겠지만 내 삶을 곡으로 만드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나는 대중이 ‘저것은 바로 내 노래야’ 라고 느끼는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가 왜 대중성의 보편성이라 할 수 있는지. 그는 영미권의 롤링스톤즈처럼 할아버지와 손자가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콘서트로 입장하는 풍경을 연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의 가수다. 그는 이제 세대와 세대를 이을 수 있는 가수가 되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에게 붙은 ‘가왕’이라는 애칭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나가수’ 스페셜에서 그의 노래는 일곱 명의 가수들에 의해 재창조 되었다. 획기적인 편곡도 있었고, 원곡보다 아쉬운 곡도 분명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왕은 이번 ‘나가수’스페셜에서 누구에게 1위를 주었을까. 그가 누구든, 그 곡이 무엇이었든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그의 판단을 궁금해 하기 이전에 그 일곱 곡의 노래 너머로 보이는 가왕의 굳건한 존재감을 다시금 떠올렸을 테니까.

장행중 기자(helix99@paran.com)

장행중 기자 ㅣ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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