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원한 젊은 오빠′ 김세환


(사진설명=김세환씨와 필자. 인터뷰는 2011년 3월3일 김세환씨의 양재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전국 순회공연, 일본-지중해 크루즈 공연, 미주공연.. 한류스타나 아이돌그룹 스케줄이 아니다. 송창식 윤형주 이익균 등 '세시봉 친구들'의 막내 김세환씨의 올해 일정이다. 세시봉의 막내라지만 ‘최강동안’ 김세환씨의 나이도 올해 만 63세다.

69년 세시봉, 70년 오비스캐빈 등에서 활동하다 71년 음반데뷔, 72년 TBC 가요대상 남자신인상, 74~75년 TBC 가요대상 대상, 74~75년 MBC 10대가수상.. 수려한 외모와 미성으로 당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김세환씨를 만나 70년대 초 포크계열을 중심으로 한 가요계 풍경을 엿보았다.

-요즘 바쁘시죠?

=갑자기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정신이 없네요. 80년대 이후에도 우리 나름대로 활동을 해왔는데 라디오에서 대박(2009년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2시간 생방송. 출연자는 김세환을 비롯해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이 나고 작년 TV에서 추석특집(2010년 MBC '놀러와')으로 방송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고 있어요. 방송의 횡포죠(웃음).

-데뷔는 어떻게 하신거죠?

=1969년 TBC 대학생재즈페스티벌에 경희대 대학팀으로 출전했어요. 창작곡이 없으니까 팝송을 불렀는데 입상은 못했어요. 그리고는 대학축제 등에 많이 불려가곤 했는데 '경희대 신방과에 노래 잘하는 친구가 있더라'라는 소문이 났나봐요. 그때 의대 재학중이던 윤형주가 이종환씨가 진행하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에 데리고 나갔고, 거기서 비지스의 'Don’t Forget To Remember'를 부르면서 방송 데뷔를 한 거죠.

-그 노래는 음반으로도 나오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 방송에서 그 노래를 부른 후 '김세환의 돈 포켓 투 리멤버'를 틀어달라는 신청곡이 계속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종환씨도 놀랐고. 이종환씨가 "야, 이거 음반 내야겠다"라고 해서, 앞 면에는 윤형주의 ‘라라라’, 뒷 면에는 '돈 포겟 투 리멤버'를 '잊지못할 내 사랑'으로 번안해서 음반이 나온 거죠. 이게 제 데뷔음반입니다(1971년 5월 유니버살 레코드.  '별밤에 부치는 노래 시리즈 Vol.3').

-그럼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는 언제 나오신 거죠?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세시봉 말년(69년 폐업)에 살짝 걸쳤던 거에요. 오히려 주무대는 명동의 오비스캐빈이었죠. 그때 오비스캐빈에는 (포크계열로는) 양희은이 자주 출연했었습니다. 그때 월급(출연료)이 25만원인가 그랬어요. 그러다 72년 월간팝송이 주최한 한국팝스그랑프리 시상식에서 포크송부문 최우수남자가수상(여자는 양희은)을 받으니까 월급이 75만원으로 뛰었어요. 하여간 얼마후 999만원을 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사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세시봉 얘기 좀만 더 해주실래요?

=당시 음악감상실은 두 종류가 있었어요. 클래식을 전문으로 틀어주는 곳과 팝 전문. 클래식 감상실은 좀 있는 집 자녀가 들락거렸고, 팝은 좀 미안한 말이지만 제가 보기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 드나드는 데는 아니었어요. 교복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가는 등 노는 애들이 끼게 돼 있었고, 담배 연기도 자욱하고. 그런데 제가 나름 저항적이어서 세시봉에 나가게 된 거에요.

-72년 TBC에서 방송가요대상 남자신인상을 받으셨는데요.

=맞아요. '옛친구'라는 노래였어요. 방송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은 겁니다. 그때 후보에 송대관씨가 올랐는데 제가 상을 받으니까 우스개소리로 그러더군요. "아, 느그들 통기타때문에 내가 10년은 늦어버렸다, 잉." 그러면서 또 이러더군요. "야만 보면 나 자존심이 상해버려잉. 내 마누라가 야 팬이거든."(웃음) 하여간 당시 포크가수들은 '학사가수다' 뭐다 하면서 은근히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참고로 송대관은 이로부터 4년 후인 76년 '해뜰날'로 MBC 10대가수왕을 거머쥐었다.)

-당시 신문을 보니까 72년엔 하춘화와 함께 뮤지컬 '우리 여기 있다'에도 출연하셨는데요. 그야말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셨네요.

=예그린이 제작한 뮤지컬이었어요. 이기하씨가 연출하고. 아무 무서운 호랑이 연출자였죠. 하여간 그때 하춘화와 한 무대에 선다는 사실에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내가 많이 올라오긴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기'라고 하니까 옛 추억이 하나 떠오르네요.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던 이종환씨가 봄철 남이섬으로 가수들을 데리고 공개방송을 간 적이 있어요. 1호차에는 남진, 2호차에는 송창식, 3호차에는 윤형주..이런 식으로 트리퍼스와 키보이스까지 버스 열 몇대가 떠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1회 할 때는 윤형주나 송창식 차에서 (좌석이 꽉 차서) 넘친 팬들이 제 버스로 넘어오곤 했는데, 2회 할 때는 제 차가 가장 먼저 찼죠(웃음). 하여간 그때만 해도 별다른 엔터테인먼트가 없었던 때였으니까요.

-73년 젊은 팝싱거 합동발표회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김세환씨를 비롯해 송창식 이장희 양희은 서유석 김도향 박상규 등이 총출동하셨어요. '포크' 대신 '팝싱거'라는 말을 쓴 게 눈길을 끕니다만.

=사실 우리 노래가 포크가 아니거든요. 코리안팝이라 불러야 맞죠. 73, 74년 되어서야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나옵니다.

-그러다 74년 TBC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물리치고 가요대상 대상을 차지하셨죠.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농담하지 말라고 그랬죠. 수상곡은 '좋은 걸 어떡해'였는데, 하여간 진짜 시상식 자체를 안 가려고 했다니까요. 덤으로 말씀드리자면, 가요계에 저처럼 고생안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운이 좋았어요. '좋은 걸 어떡해'도 사실 윤형주 노래였는데, 윤형주가 오비스캐빈에서 이 노래를 부르길래 "형, 이 노래 나 주라"라고 해서 제 노래가 된 거에요. 녹음할 때는 윤형주씨가 기타도 쳐주고 화음도 넣어주고 그랬죠.

-74년 무렵엔 남성 4중창단 블루벨스 출신의 서양훈씨가 김세환씨 매니저로 활동하셨네요.

=제가 부탁한 거에요. 추석이나 설날, 이런 때면 하루에 수유리, 불광동, 영등포 등 수십곳의 극장쇼 무대에 서야했거든요. 뭔가 스케줄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었어요.  

-요즘은 아이돌그룹 천국이라 할 만 한데요.

=지금 젊은 애들 음악, 좋은 것 많아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란 게 어차피 '유행가'니까요. 내 노래가 중요하면 상대방 노래도 존중해야죠. 시대 따라 흘러가는 게 노래니까. 어린 팬들이 '세시봉 친구들'에 열광했던 것도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서로를 존중해줬으니까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김관명 연예부장 ㅣ 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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