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 너무 공백 길었나?

에이핑크의 신곡 ‘내가 설렐 수 있게’가 이번 주 주간차트 24위를 차지했다. 9월 말에 음원이 출시된 후 매주 10계단씩 빠른 속도로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에이핑크는 지난 2015년 누적 음반/음원 판매량 집계에서 소녀시대 다음가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명실공히 국내 걸그룹 서열 넘버 2의 입지를 다진 바있다. (‘2015 결산, 걸그룹 순위’ 칼럼 참조) 에이핑크 같은 최정상급 걸그룹의 컴백 음원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순위가 하락한 사례는 근래에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 에이핑크와 관련한 각종 데이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위 그래프는 에이핑크가 데뷔 이후 출시한 주요 음원들의 초기 매출을 비교한 것이다. 발매 후 2주차까지의 매출 합산 비교에서 ‘LUV’가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고 Mr. Chu(On Stage)가 그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출시된 ‘내가 설렐 수 있게’는 2011년에 출시된 ‘MY MY’ 보다 낮은 매출을 기록했다. 

최정상급 걸그룹 인지도를 가진 팀의 최신 음원이 데뷔 당시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컴백 시기에 따른 경쟁 가수와의 순위 비교가 아닌 에이핑크 스스로의 매출 기록 비교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의아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겠다.

위 그래프는 에이핑크가 데뷔 이후 출시한 음반들의 2주차 누적 판매량을 비교한 것이다. 2011년 데뷔 초기에는 2천여 장의 판매량에 불과했었으나, 점진적인 팬덤의 증가로 판매량이 2012년에는 1만 장, 2014년에는 5만 장, 2015년에는 7만 장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 출시된 ‘Pink Revolution’ 앨범의 2주차 누적 판매량은 4만 8천여 장으로 지난해 발매된 ‘Pink MEMORY’에 비해서 약 37% 판매량이 감소했다. 

아이돌의 음반 판매량은 팬덤의 충성도가 견고할 경우 음원의 흥행과 거의 무관하게 팬덤 수에 비례해서 음반이 팔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에이핑크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음반 판매량이 감소세로 나타남에 따라 팬덤의 충성도에 다소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된다.   

위 그래프는 올해 출시된 주요 걸그룹의 2주차 누적 음반 판매량을 비교한 것이다. 트와이스가 8만 7천여 장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IOI가 5만 4천여 장으로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에이핑크는 4만 8천여 장으로 레드벨벳과 IOI의 중간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국내 걸그룹 중 소녀시대 다음으로 많은 팬카페 회원 수(다음, 약 15만명)를 보유한 걸그룹의 음반 판매 성적으로는 믿기 힘든 결과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15만 명의 팬카페 회원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5만명 가량의 팬들만이 음반을 구매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이돌의 음반 판매량은 발매 초기 1~2주 사이에 전체 판매량의 80~90%가 팔려 나간다)

위 그래프는 에이핑크의 최근 2년간 팬카페 회원 수 증가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2014년에는 반기(6개월)에 약 2만 명의 회원 수 증가가 있었지만, 2016년부터는 그 증가 폭이 급격히 줄어들어 최근에는 반기에 약 4천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5년 7월 ‘Pink MEMORY’ 활동 이후 가졌던 1년 2개월 간의 공백기와 팬카페 회원 수 증가 둔화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 그래프는 에이핑크의 최근 4년간 언론 노출량을 나타낸 것이다. 언론 노출량 그래프 역시 음반 판매량 그래프와 마찬가지로 에이핑크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앞서 언급한 공백기가 길었던 측면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위 그래프는 주요 걸그룹 뮤직비디오 트래픽 중 국내에서 발생 트래픽의 비중을 비교한 것이다. 트와이스와 레드벨벳이 36%, 원더걸스 32%, AOA 30%, 에이핑크 29%로 조사되었다. 

조사대상 중 AOA와 에이핑크의 2015년도 국내 트래픽 비중은 모두 34% 선을 유지했었으나, AOA의 경우 설현의 이슈로 인한 조기 활동 종료, 에이핑크는 긴 공백기로 인한 신규 뮤직비디오 부재가 각각 국내 트래픽 비중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에이핑크와 관련한 데이터들을 음원, 음반, 기사량, 팬덤, 유튜브 등 부문별로 살펴보았다. 에이핑크의 신곡 ‘내가 설렐 수 있게’의 가파른 순위 하락에는 단순히 음원만의 문제가 아닌, 긴 공백기로 인한 팬덤의 충성도 저하 또는 이탈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요즘 걸그룹 시장은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반기에 한 번씩 컴백을 하더라도 제자리를 지키기 버거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1년 2개월이나 자기 안방을 비워두고 컴백 타이밍에 해외 활동을 한 것은 제작사의 전략적 실수로 보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군대 간 남자를 기다라는 여자뿐만 아니라 걸그룹의 컴백을 기다리는 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혹자는 1년 2개월 못 기다리는 팬이 팬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팬 저런 팬 모두 걸그룹이 보듬고 가야 할 팬들인 것이다.   

에이핑크는 섹시콘셉트 일색의 국내 걸그룹 시장에서 청순콘셉트로 성공해 그간 후속 걸그룹들의 롤모델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비슷한 콘셉트의 걸그룹이 많아져 팬덤 이탈이 발생한 측면 역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핑크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팬들과 스킨십을 늘리고 당분간은 해외 활동보다 국내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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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
 
<글쓴이 약력>
 
1990년대 말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뮤직비즈니스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CT 대학원에서 Cultural Management & Policy 석사학위를 받았다. 음악업계에는 1999년에 처음 입문하였으며 2009년에는 KT뮤직에서 차장 지냈다. DSP미디어 ‘카라프로젝트’ 전문심사위원과 Mnet ‘레전드 100송’ 선정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심의위원, ‘SBS 인기가요’ 순위 산정방식을 설계할 때 알고리즘 자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 음악전문 데이터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대표 저서로는 ‘뮤직비즈니스 바이블’이 있다.  

Email: littlegiant9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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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수석연구위원 ㅣ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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