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차트 개편’ 진단 |
디지털 음악시장에는 두 가지 해묵은 숙제 있다. 하나는 0시 음원 공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원 사재기 문제이다. 이 음원 사재기 문제는 다시 기업형 사재기와, 이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는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0시 음원 공개는 공정 경쟁의 관점에서 그 간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 왔으며, 4년 전 필자의 칼럼에서도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심야 시간을 이용한 실시간 차트 ‘줄 세우기’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 음원의 노출 증대라고 할 수 있다. 심야 시간에는 낮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악사이트의 전체적인 트래픽이 감소하게 되는데, 이때 신규 음원을 공개하고 특정 가수의 팬들이 집중적으로 음원을 감상할 경우 마치 ‘무주공산’에 ‘무혈입성’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게 된다. 지금 상황을 2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다른 선수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시간에 혼자 나와 비어 있는 트랙 100미터를 달려놓고, 경쟁 선수들이 출발하는 시점에 가속도를 이용해 200미터까지 달려 결승 테이프를 끊는 것과 유사하다. (‘줄 세우기’ 심야 마케팅 이대로 좋은가? 칼럼-2013년 10월 10일) 두 번째, 음원 사재기 문제는 2015년 10월 JTBC에서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으며 가수 이승환, 박진영 등이 뉴스룸에 출연해 사재기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등 음원 사재기 논란이 정점을 찍었었다. 당시 음악업계에는 아래 두 가지 주장이 있었으며 이 두 주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뜻있는 음악업계 관계자들은 음악시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과열경쟁과 사재기를 부추기는 실시간 차트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음악사이트의 입장은 “실시간 차트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이들을) 음악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순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이에 맞서고 있다. (‘음원사재기’와 ‘실시간 차트’ 칼럼 중에서, 2015년, 10월 23일) 이번에 단행된 실시간 차트 개편은 0시 음원 공개를 줄이는 데는 일단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실시간 차트 개편 후 신규 음원 발매가 정오와 오후 6시에 진행 또는 예정되고 있어, 낮 시간 음원 간 순위 경쟁이 과거에 비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비유한 200미터 달리기 경주 사례에서도 언급 했지만, 앞으로는 새벽에 혼자 나와 트랙을 달리는 선수는 이제 좀처럼 보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개편안이 0시 음원 공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미봉책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이유는 두 번째 숙제인 음원 사재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편 이후에도 새벽 시간을 이용한 기업형 사재기와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 실제, 개편 다음 날인 2월 28일 오전에 확인한 실시간 차트 그래프에서는 남자 아이돌 가수 음원이 새벽 0시부터 아침 6시까지 경쟁 음원과는 정반대로 꾸준히 이용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덤에 의한 스트리밍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2015년 10월, 칼럼 ‘음원 사재기’와 ‘실시간 차트’를 통해서 실시간 차트에 대해 업계 절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칼럼의 골자는 실시간 차트를 주식시장과 같이 개장 시간과 폐장 시간을 정해 운영하고 폐장 시간 이후에는 차트를 freeze 시키는 것이었다. 기대 효과는 다음과 같다. 기대효과 1. 음원 간 진검 승부가 가능해진다. 실시간 차트를 정해진 시간, 예를 들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사용량 만을 반영해 차트를 운영한다면, 심야에 음원을 출시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자정에 음원을 출시하면 음원 사용량이 적은 밤 사이 팬덤의 도움으로 순위를 올려 아침 출근시간 차트 상위권에 노출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기업형 사재기와 사실상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일과 시간에만 실시간 차트를 운영한다면 제작사와 유통사들은 자신의 음원을 실시간 차트에 반영 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주중 일과 시간에 음원을 출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일과 시간은 주요 아이돌을 보유한 대형 제작사의 팬덤이 학교에 있을 시간이기 때문에 팬덤에 의한 ‘스트리밍 공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음원 사재기’와 ‘실시간 차트’ 중에서, 2015년, 10월 23일) 기대효과 2. 음원 사재기에 필요한 비용(cost)이 상승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른 아침 시간에는 음악사이트의 트래픽이 많지 않아 적은 양의 사재기로도 실시간 차트의 순위를 올리기 쉽고 음원 사용량이 많은 아침 출근길 차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낮 시간대에는 음원 사용량이 많아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헤엄을 칠 때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것처럼 사재기에 필요한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새벽시간에 한 계단의 순위를 올리는데 1백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면 낮 시간에는 2~3백만 원의 비용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음원 사재기가 자행되는 이유는 많은 비용을 들여 사재기를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재기에 필요한 비용이 상승한다면 사재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 봐야 할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사재기의 경제성이 저하되면 사재기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음원 사재기’와 ‘실시간 차트’ 중에서, 2015년, 10월 23일) 만약 주식시장이 음악사이트 실시간 차트처럼 24시간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증권사 거래 수수료와 정부 세수는 증가하겠지만, 적어도 국민의 3분의 1은 불면증에 시달려 정상 생활을 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손실을 입는다는 뜻이다. 이번 실시간 차트 개편 과정을 지켜보며 떠오른 말이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음원 사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면, 실시간 차트 폐지론은 지금보다 더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실시간 차트 폐지론이 더 힘을 받는 상황이 우려된다면, 디지털 음원 업계는 한발 더 나아간 추가 개편안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음원 사재기'와 '실시간 차트' 지난 칼럼 보기 글: 김진우 음악전문 데이터 저널리스트 *본 칼럼의 내용은 가온차트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쓴이 약력> 1990년대 말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뮤직비즈니스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CT 대학원에서 Cultural Management & Policy 석사학위를 받았다. 음악업계에는 1999년에 처음 입문하였으며 2009년에는 KT뮤직에서 차장 지냈다. DSP미디어 ‘카라프로젝트’ 전문심사위원과 Mnet ‘레전드 100송’ 선정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심의위원, ‘SBS 인기가요’ 순위 산정방식을 설계할 때 알고리즘 자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 음악전문 데이터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대표 저서로는 ‘뮤직비즈니스 바이블’이 있다. Email: littlegiant911@gmail.com |
김진우 수석연구위원 ㅣ 2017-03-06 |